들어가며
두런두런 제가 참 많이 좋아하는데요.
프로젝트가 끝난 지금, 프로젝트 회고도 마쳤으니 제 삶에 대한 회고도 할 겸 ‘삶의 지도’를 그려볼까 합니다.
사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고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걱정되는데요. 일단 두서없이 적어보겠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질까봐 걱정이네요.
일단 제가 기억하는 제 삶의 첫 부분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최초의 기억
인간이란 망각의 동물. 자기가 태어나던 순간이 똑똑히 기억나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 (있으면 알려주세요. 궁금하네요.)
제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거실에 앉아서 문 열린 누나 방의 안 쪽을 쳐다보는데,
누나 방에서는 아버지께서 컴퓨터로 업무를 보셨던 기억입니다.
그때의 저는 초등학생이었는데, 저희 아버지의 직업이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걸 그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뭐가 뭔지는 몰라도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은 ‘컴퓨터’라고 불리는 게임기 앞에서 하루종일 있을 수 있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저의 꿈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였습니다. (코딩이고 뭐고 그런 거는 하나도 몰랐습니다.)
가위바위보로 인생이 바뀜
저희 초등학교에는 주에 한 번씩 금요일에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초등학교 6학년때 처음으로 ‘프로그래밍 동아리’라는 게 생겼습니다.
저는 프로그래밍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마음…은 뻥이고 그냥 컴퓨터실에서 수업하니까 자유시간에는 게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프로그래밍 동아리’에 지원했습니다.
그때 진짜 엄청 많은 학생이 지원했어요. 8~10명씩 묶어서 가위바위보해서 그 중 한 명씩만 뽑히고 그랬었는데, 운명인지 뭔지 행운이 따라줘서 제가 프로그래밍 동아리로 소속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스크래치 라는 교육용 프로그래밍 언어를 처음 배웠는데… 진짜 너무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보니까 또래에서도 제가 좀 잘하는 편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러다보니까 또 흥미가 붙고, 열심히 하고, 더 잘해지는 선순환으로 저는 자유시간에 게임도 안하고 그냥 계속 스크래치만 만지고 있었죠.
그래서 그때 진심으로 “아. 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어야 겠다.”라고 생각했고 아마 또래보다 빠르게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나 회고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위바위보 졌으면 다른 거 하고 살았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선생님이라든지?
질풍노도의 시기
는 어그로고, 중학교 + 고등학교 시절은 그냥 무난히 보냈던 것 같습니다.
수학이 좋아서 이과를 선택했고, 물리가 재밌어서 과탐으로 물1, 물2 고르고 … 작렬하게 전사하고 …
그래서 재수해야 할 줄 알았더니만 논술로 나름대로 (내 기준) 대학을 잘 갔고 …
아쉬운 점은 중학교 + 고등학교 시절에 코딩을 더 해봤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그냥 꿈만 프로그래머고 코딩은 안하고 학교 공부만 했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 (진짜임)
중학교 + 고등학교 때보다 새내기때 방황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다 처음 배우는 나 같은 사람만 있을 줄 알았는데, 누군 공모전에서 상을 탔고… 누군 KOI를 나갔고… 개발도 다 할 줄 아는 것 같고… 난 html이니 css니 있는지도 몰랐는데 다들 아는 분위기인 것 같고…
그리고 이미 다 기숙사로 먼저 들어온 사람들은 이미 다 서로 친해보여서 내가 들어갈 틈도 없어 보이고… 그래서 조바심에 나도 얼른 친구를 만들어야겠다고 들어간 무리는 너무 나랑 성향이 안 맞아서 차라리 혼자 다니는 게 낫다 생각도 들고…
그때는 그냥 반수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지금 적어놓고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네요. 허허.
정상화
그러다가 교내 알고리즘 학회(라고 쓰고 과 동아리라고 읽음)에 들어가게 됩니다.
학회에서는 백준 온라인 저지 에 올라오는 문제를 어떻게 풀지 배우는 스터디 같은 걸 진행했는데, 그 스터디에 참가했습니다.
그래도 다 괴물들 밖에 없는 줄 알았더니만, 제 수준에 맞는 스터디를 들으니 나 같은 사람도 꽤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집 가는 길이 겹치는 친구 한 명을 알게 되어 빠르게 친해지고, 스터디 해주시는 멘토 선배님과도 친해지면서 ‘그래도 할만하네.’ 정도는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바람이 분다
그렇게 학회 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1학년 2학기까지 마치고 저는 제 대학 생활의 터닝 포인트를 만나게 됩니다.
그건 바로 겨울 방학에 열린 ZOAC 라는 학회 내 알고리즘 대회였습니다.
새내기는 2인 1팀으로 참가가 가능했기 때문에, 학회에서 친해진 친구와 함께 경험삼아 도전하고자 대회에 출전하였고… 우승을 합니다. (ㄷㄷ)
아무리 2인팀이었다고는 하지만 2~4학년 선배님들께서도 참가하는 대회에서 새내기가 우승한 건 아무래도 신기한 일이었고, 동기나 다른 선배님들이 먼저 관심을 가져주셔서 빠르게 많은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글을 읽다가 “이 X끼 찐따인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그건 사실입니다 ㅎㅎ;
군대가 가기 싫은 나
원래는 1학년 마치고 군대를 갈 생각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많은 사람들과 친해지고 놀게 되면서 정말 군대가 가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처음으로 대학 생활이 재밌다고 느껴지는 시점이었는데, 좀 더 놀고 싶어졌고… 종국에는 군대를 가고 싶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시기에 “대학원을 가면 군대를 안가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는 무슨 전문연?이라는 걸로 군 복무를 대신할 수 있고, 근데 대학원마다 TO가 달라서 이걸로 군 복무를 못 뺄 수도 있지만, KAIST는 항상 TO가 있어서 KAIST 대학원을 오면 군 복무를 뺄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마침 저는 평점이 꽤 높았고 (급자랑: 과탑이었습니다.) 이미 그렇게 전문연을 하고 계시는 학교 선배님도 계시겠다 KAIST 대학원을 목표로 평점 관리를 시작하게 됩니다.
강박증
모든 평점 A+을 목표로 평점 관리를 하는 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퀴즈, 모든 과제, 모든 시험에 제가 할 수 있는 100%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잠깐 쉬다가도 지금 쉬는 것 때문에 A+을 못 맞고, 결과적으로는 군대를 가야 하는 상황에 놓여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으로 다시 강박적으로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근데 진짜 이렇게 하면 사람이 미칩니다. 항상 최선을 다하게 되면 번아웃이 진짜 쎄게 오더라구요. 전 그게 번아웃인지 그 때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아예 용어 자체를요.
그러다가 큰 두 가지 사건을 겪게 됩니다.
하나는 인간관계에 관한 문제였고… (이건 비밀임 ㅋㅋ)
다른 하나는 진짜 거의 모든 학생이 A+을 받는 절대평가 전공 수업에서 크게 미끄러져 B+을 받게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전말은 이렇습니다. 기말고사를 온라인으로 봤는데 다 풀고 나서 계속 강박적으로 검산하고 시간이 끝날 때 쯤 아슬아슬하게 제출을 했는데… 아뿔사. 시험 문제를 A4 용지로 2쪽을 줬는데 그 중 1쪽만 풀고 낸 겁니다.
기말고사 점수가 반토막 나버린 저는 B+을 받은 진짜 얼마 없는 학생 중 하나가 되었고… 그대로 멘탈이 나가버립니다.
그렇게 한번 무너지고 나니까 다음 학기에 또 학교를 가야 한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냥 너무 힘들어서 다 놓고 쉬고 싶었습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21년도 3월에 군 입대를 하게 됩니다.
대학원이냐 아니냐
실제로는 21개월(주: 공군)이라는 거의 영겁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저는 앞으로 뭐할지 고민을 했습니다.
기존에 정한 대학원이라는 목표도 연구에 뜻이 있기 보다는 그냥 군대 빼고 싶다는 마인드로 정해놓은 거라 이제는 진짜 뭘 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남들보다 나은 게 뭔지 생각해봤고… 평점말고는 뭐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평점 높다고 취업이 잘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살릴지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다시 대학원에 시선이 갔습니다.
듣기로는 평점만 높으면 대학원 입시는 어렵지 않은 것 같았고, 박사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석사까지 하면 어떻게든 취업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인턴이 되
영겁에 가까운 시간동안 리프레시를 마친 저는 복학 후 연구실 인턴을 하게 됩니다.
근데 정말 웃긴 게 연구실 인턴을 컨택없이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이 연구실에서 뭘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전말은 이렇습니다… 저희 학교에는 ‘연구실심화실습’이라는 과목이 있는데, 수강 신청때 여타 다른 과목들 처럼 신청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듣기로는 이게 연구실 인턴을 하는 과목이라고 알고 있었고… 그냥 신청을 하면 자동으로 인턴이 되는 줄 알고 아무 생각없이 신청을 한 것입니다.
근데도 교수님이 절 좋게 봐주셨는지 (왜…?) 따로 저를 불러서 이런 연구실이라고 소개해주시고 관심이 있으면 계속 해도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침 주제도 재밌어 보였고 (궁금하시면 이쪽 ) 대학원 경험을 간접적으로 해보고 싶었던 저는 미리 말했듯이 연구실 인턴을 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연구할 때 필요할 거라고 맥북도 빌려주셨습니다… 교수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초심자의 행운
1년 동안 연구실 인턴을 하고 전 4학년이 되었습니다.
주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잘 맞아서, 졸업작품(궁금하시면 이쪽 )도 연구실에서 단독 연구로 진행하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내다가 무언가 분주히 하고 있는 동기들을 발견합니다.
알고보니 채용 시즌이라 열심히 자소서를 쓰고 있는 중인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코테나 보자는 마인드로 저도 N 모 대기업에 지원했습니다.
지원 분야가 백/프론트/데이터(라고 쓰고 거의 AI)/Android/iOS로 5가지였는데, 백이나 프론트는 면접가서 크게 혼날 것 같고… App 개발 쪽은 아예 모르고… 그래서 그나마 복학하고서 들은 강의랑 연관되어 있는 데이터로 지원했습니다.
근데 코테를 운 좋게 뚫었습니다?? 그래서 기술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
Q: “Kaggle도 혹시 하시나요?” A: “어… Kaggle이 뭐죠?” (레전드 ㅋㅋ)
Q: “알고리즘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그럼 알고리즘으로 서비스를 개선한 경험이 있나요?”
A: “연구실에서 제가 …”
Q: “아니 연구실에서 한 거 말고, 서비스에서요.”
A: “어… 그런 경험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레전드 ㅋㅋ2)
이따위로 봐서 당연히 안될 줄 알았는데 또 붙습니다?????????????????
면접은 진짜 결과를 까보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확언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남은 건 최종 면접 단 하나… 과연 필자의 운명은?
대학원에 가기 싫어요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됐으면 지금 다니고 있겠지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니까 참 의욕이 안 돌아오더라구요. 앞으로 한 발자국이었는데… 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슬슬 이제 대학원 원서를 쓸 준비를 해야 하는데… 뭔가 대학원에 끌려가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또 ‘어차피 취업할 생각인 거면 굳이 대학원을 가야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곧 ‘그럴거면 차라리 바로 취업 준비를 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저는 지금까지 진지하게 취업을 준비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가 ‘프로젝트 경험 부재’라고 생각되었고, 프로젝트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이 곳 네이버 부스트캠프 AI Tech 7기로 합류하게 됩니다.
사실 대학원 원서랑 부캠이랑 동시에 냈는데 대학원은 서류탈락해서 미련도 없어졌습니다
부스트캠프
아직 기간이 40% 정도만 지난 것 같지만 짧게 후기를 남겨보겠습니다.
정말 대단하신 분들도 부캠을 신청하시는구나 싶었습니다. 이번에 구인구팀에 소개글을 읽는데 “이런 대단한 스펙으로도 부캠을 오셨다고? 이런 분들도 취업이 안되시나?” 하는 생각이 되게 많이 들어서 제 미래가 살짝 걱정되었습니다 ㅎㅎ.
또 뭔가 다들 비전이 있으시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보면 우연에 우연에 우연이 겹쳐 이 곳까지 오게 된 케이스라서 취업이라는 목표를 넘어서는 큰 뜻이 없습니다. 근데 다들 막 어떤 산업에 관심이 있고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고 그런 내용을 갖고 있는 게 멋있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 내심 부캠이라는 단어 자체가 수료하기만 하면 엄청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어떤 블랙박스처럼 여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료만 한다고 엄청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라 내가 직접 온몸으로 구르고 부딪혀야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직접 부캠을 활동하면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마치며
변성윤 마스터님께서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스스로 정한 목표를 이루고 있는지 생각하라고 (이런 뉘앙스로) 말씀하셨습니다. 제 목표는 ‘프로젝트 경험 부재 해결’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충분히 이루고 있지만, 부스트캠프는 이런 목표만 이루기에는 너무 좋은 프로그램인 것 같아서 계속 추가적인 목표를 고민하게 되네요…
이런 식으로 삶의 지도를 그리는 게 맞나 싶네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